9월 모임
1. 2025년 9월 30일 오후 1시
신혜정, 박선희, 하승연, 전제아 모였음.
셀리 리드(Shelley Read)의 <흐르는 강물처럼(Go As a River)>.
2. <흐르는 강물처럼>은 신혜정의 추천이었다. 혜정이는 최근 몇 년동안 연로하신 엄마를 돌봐드리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 생애의 여정,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고 우연히 알게 된 이 소설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3.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은 여성이었고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여성의 삶이었다는 점이 조금 더 와 닿기는 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여성주의 소설은 아니다. 인간의 상처와 회복 전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여성이지만 여성주의 시선에 그다지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4. <흐르는 강물처럼>은 상처 입은 한 소녀에서 시작한다. 소녀는 어머니를 잃었고 남자들로 가득찬 가정 안에서 지루하고 친절하지 않은 일상 속에 갇혀 있다가 길거리에서 또 다른 인디언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어리석고 잔인한 그녀의 남동생이 맹목적인 인디언에 대한 혐오를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실천하면서 소년을 잃어 버린다. 소설 속에서 엄마의 죽음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엄마는 아마도 우울증과 정서적 고립을 겪고 있어고 어느 날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암시될 뿐이지만, 남겨진 딸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상실로 존재한다.
5. 우리가 다같이 뭔가 치유 감정을 갖게 되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원래 살던 집이자 복숭아 농장이 댐 건설로 수몰될 때, 그 나무들을 옮겨 와서 이후에 천천히 꾸준히 복숭아 농장을 복원해 가는 과정이었다. 주인공은 인간들과는 소외와 갈등, 끝임없는 공격을 경험했던 반면에 복숭아 농장에 대해서는 마치 탯줄처럼 고향을 느낀다. 주인공이 소녀의 몸으로 임신상태를 유지하고 출산하기 위해 가출하여 인적 드문 숲속에서 지낼 때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껐을 때와 그 묘사가 많이 겹쳐진다. 인간은 맹목적인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시때때로 드러내지만, 자연의 일관성은 인간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6. 오늘 토론에서는 하승연의 소감이 인상적이었다고 다같이 생각을 같이 했다. 하승연은 복숭아 농장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묵묵하게 복숭아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든 나무를 정리하는 육체노동을 수행하는데, 이런 노동은 거창한 삶의 개선이나 계획이 아니라 그저 하루르 버티기 위한 행위 같았다. 하지만 그런 무의식적인 반복 속에서 다시 삶의 리듬을 되찾기 시작하는 모습 속에서 일사의 노동이 자연으로의 회귀이자 치료이기도 한다는 점을 보였다고 했다.
농장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는 없고 모든 나무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한다, 이 태도는 사실, 삶을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선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9월 모임
1. 2025년 9월 30일 오후 1시
신혜정, 박선희, 하승연, 전제아 모였음.
셀리 리드(Shelley Read)의 <흐르는 강물처럼(Go As a River)>.
2. <흐르는 강물처럼>은 신혜정의 추천이었다. 혜정이는 최근 몇 년동안 연로하신 엄마를 돌봐드리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 생애의 여정,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고 우연히 알게 된 이 소설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3.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은 여성이었고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여성의 삶이었다는 점이 조금 더 와 닿기는 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여성주의 소설은 아니다. 인간의 상처와 회복 전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여성이지만 여성주의 시선에 그다지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4. <흐르는 강물처럼>은 상처 입은 한 소녀에서 시작한다. 소녀는 어머니를 잃었고 남자들로 가득찬 가정 안에서 지루하고 친절하지 않은 일상 속에 갇혀 있다가 길거리에서 또 다른 인디언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어리석고 잔인한 그녀의 남동생이 맹목적인 인디언에 대한 혐오를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실천하면서 소년을 잃어 버린다. 소설 속에서 엄마의 죽음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엄마는 아마도 우울증과 정서적 고립을 겪고 있어고 어느 날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암시될 뿐이지만, 남겨진 딸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상실로 존재한다.
5. 우리가 다같이 뭔가 치유 감정을 갖게 되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원래 살던 집이자 복숭아 농장이 댐 건설로 수몰될 때, 그 나무들을 옮겨 와서 이후에 천천히 꾸준히 복숭아 농장을 복원해 가는 과정이었다. 주인공은 인간들과는 소외와 갈등, 끝임없는 공격을 경험했던 반면에 복숭아 농장에 대해서는 마치 탯줄처럼 고향을 느낀다. 주인공이 소녀의 몸으로 임신상태를 유지하고 출산하기 위해 가출하여 인적 드문 숲속에서 지낼 때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껐을 때와 그 묘사가 많이 겹쳐진다. 인간은 맹목적인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시때때로 드러내지만, 자연의 일관성은 인간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6. 오늘 토론에서는 하승연의 소감이 인상적이었다고 다같이 생각을 같이 했다. 하승연은 복숭아 농장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묵묵하게 복숭아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든 나무를 정리하는 육체노동을 수행하는데, 이런 노동은 거창한 삶의 개선이나 계획이 아니라 그저 하루르 버티기 위한 행위 같았다. 하지만 그런 무의식적인 반복 속에서 다시 삶의 리듬을 되찾기 시작하는 모습 속에서 일사의 노동이 자연으로의 회귀이자 치료이기도 한다는 점을 보였다고 했다.
농장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는 없고 모든 나무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한다, 이 태도는 사실, 삶을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선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